더보기

이쿠하라 쿠니히코 사라잔마이 감독 토크쇼 中
“특별히 동성끼리라는것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는 생각하고 있다. 나는 남녀 관계없이 무법자가 좋다. 무법자는 영혼을 깎아내며 싸우는 이미지. 그 삶이 아름답게 보이고 그래서 남녀 관계없이 서로 끌리는 이야기가 좋다. 서로 공동투쟁하는 공범 같은 관계가 좋아.”
(…)
“가족 문제를 자주 소재로 선택하는 이유를 자가분석하자면 자신의 가족을 생각했을 때 가족의 형태를 잘 모르는 느낌이었다. 불행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항상 단신 부임이라 모자 가정과 같았다. 그런 아버지도 단신 부임처에서 갑자기 죽어버렸다. 장남으로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가족의 형태란? 하고 생각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을지도.”

돌아가는 펭귄드럼 인터뷰 中
‘사랑’으로 집약되는 이야기라고 본다면, <펭귄 드럼>은 상당히 직설적인 이야기네요.
“우리 세대라면 어느 한 시기에 애니메이션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남발했던 것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지 않습니까(웃음). 그 때문인지 어떤 세대는 애니메이션의 내용을 굉장히 시니컬하게 보고 있죠. 니힐리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요. 미디어는 오히려 반대로 무엇이든지 사랑이었습니다. 돈이 아니다, 사랑이다라고 말이죠. 그런데 애니메이션만은 사랑에 대해 굉장히 시니컬하고 엄격했죠(웃음). 이러한 대미지는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남아있다고 느낍니다만. 저는 이제 시니컬이나 니힐리즘에 질려버렸거든요. 지금 사랑 이야기를 하지 않고 언제 하자는 말인가 하고요.”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았다는 것인가요?
“저는 너무 구린가… 혹은 너무 꼴사납지 않을까 해서 망설였지만요. 유리도, 타부키도 몇 번이고 말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말로 하지 않으면 절대로 전해지지 않을 것 같아서 좀 더 분명하게 말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어요. 왠지 사랑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이미 세상은 이제부터 극적으로 좋아질 일 따윈 없어요. 애초에 일본의 인구는 줄어들고 있으니까 말이죠. 그런 와중에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역시 다른 사람을 좋아하거나 관계를 맺거나 그런 것들밖에 없지 않을까요? 저 같은 경우는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는 것은?
“생명의 무게는 무엇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인가 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사건이든 사고든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현상에 자신이 가해자로 관여할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그러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상, 악의가 있던 없든, 직접적인 가해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누군가 누군가의 벌을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연히 이것은 법률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시스템은 나쁜 일을 한 사람과 옳은 일을 한 사람. 이런 식으로 두 부류로 갈라 나는 저쪽과는 관계없습니다 라는 태도를 취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고 싶으니까 말이죠.하지만 그것은 어둠을 커다란 보자기로 싸서 임시로 덮어놓은 것에 불과해요. 사실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겁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런 부분에 다가가보고 싶었습니다.”

확실히 펭귄 드럼의 캐릭터는 선악으로 나눌 수 없네요.
“모두들 반쯤은 악이라고 할까요. 죄인 측에 얽혀 있습니다. 본디 세계는 그러한 두 개의 상반된 것으로 구성되어 있을 테니까요. ”


더보기


B END
프리아에의 시신을 안고, 홀로 선 카임.
그 하늘은 여동생으로 가득 차, 인류에게 죽음의 미소를 던지고 있었다.



D END
「미안해……」
염원의 시간 속에서 세에레는 마나에게 용서를 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봉인하는 힘으로 시간을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