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X1

 

"도망치지 마! 알아. 아이들을 되찾아도 아무것도 못할지 몰라. 어쩌면 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지도…. 그게 무서운 거지? 하지만 지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 힘들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니까. 혼자서는 살 수 없으니까 감안해야 돼. 외톨이가 되긴 싫잖아? 전화받지도 않는 주제에 전화기 버리지도 않고."
에어리스의 죽음으로 인해 삶을 회피하고 도망치는 클라우드에게 티파가 건네는 말

 

 강경 원작충이지만 파이널 판타지 7 원작은 할 생각이 없기도 하고, 한다고 해도 머나먼 훗날의 이야기일 것 같아서 실황 조금 보다가 원작 이후 시점인 어드벤트 칠드런은 왓챠에 있는 영화인지라 가볍게 보기 좋을 것 같아 이번에 보게 됐다~ 개인적으로 AC(어드벤트 칠드런 줄인 말)의 3D 그래픽이 2000년대 초반 경계선에 놓인 열화 된 상투적인 그래픽에 캐릭터 얼굴 조형 자체가 취향이었다. 조형 이대로 쭉 가도 좋았을 텐데 기술력의 발전이란….

 게임하면서 검색하다 보니까 알게 된 사실인데 국내에서 파이널 판타지 7 표절이 정말 많았고, 스퀘어 에닉스가 손해배상도 청구했었다고 해서 민망해진 감이 있음. (레퍼런스 참고하는 건 나쁘지 않은데 그대로 갖다 베껴서 원작 열화판으로 만드는 게 문제.) 안 그래도 파이널 판타지 8(1999)도 시작했는데 어릴 때 본 국내 3D 애니메이션 레카(2001)와 설정 일부랑 캐릭터 디자인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서 (오프닝 보자마자 연상될 정도였음)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유명세가 새삼 실감이 되던..

 지금 리메이크 엔딩 보고 리버스 중반 도중 AC 보는 건데, 세피로스 마더이슈 심각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죽은 세피로스의 세포가 분열된 사념체에 가까운 3형제들도 마더이슈 심각해서 개큰웃음 나옴ㅠㅠ 뭐만 하면 "어머니 제노바" 개큰웃음; 호조가 쓰레기 남자라 아버지 역할 제대로 수행 못 해서 세피로스가 어머니에 미치고 이 지경에 이르렀고, 세피로스 호조를 끔찍이 싫어했으면서 똑같은 남자 된 것도 소름 돋기도 함.

 영화에 쓰인 OST는 원곡을 편곡한 건데, 편곡된 수록곡들이 훨배 마음에 들었다. 게임하면서 음악이 귀에 익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티파 테마곡은 미니게임하면서 익혀갖고 이 노래만큼은 제일 잘 알고 있는 상황.

 영화 번역 수준이 별로여서 자막 보면서 많이 깼다. 원문 파악이 가능한 수준이라 다행이지 자막만 보고 파악하기엔 번역이 별로임.

 

"에어리스가 없어져 버려.
에어리스는 이제 말할 수 없어.
이제…… 웃지 못해. 울지도 못해… 화내지도 못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 이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하지?
손가락 끝이 찌릿찌릿해. 입안이 바삭바삭해져. 눈 안쪽이 뜨거워!"
유언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 에어리스를 끌어안은 채로 클라우드가 말한다.

 

원작, 에어리스를 수장(水葬)하는 클라우드.

 
  AC에서 새로 등장하는 병은 '성흔 증후군'이다. 라이프스트림에 이어진 어떠한 부작용이라던데 라이프스트림의 개념을 아직 잘 파악하지 못해서 (영혼들이 모인 사후세계 같기도) 리메이크 최종장에서 풀리는 내용을 봐야 할 것 같다.

 확실히 세피로스는 3형제의 '가족' 운운도 그렇고, 가족에 대한 결핍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어머니 뇌절도 설명 불가능하긴 한데, 결핍은 호조가 큰 공을 세우는데 한몫한 것 같음.

 3형제가 클라우드 보고 형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클라우드에 대한 집착도 가족에 대한 결핍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어진다. 난 세피로스를 좋아하는 편인데 확실히 주인공의 대척자에 놓여있는 최종보스 캐릭터는 '매력'만으로 독자를 설득하고 사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듦. 세피로스 캐릭터가 별로였으면 게임 오래 붙잡지 않을 것 같아서…

 클라우드는 티파, 마린과 함께 세븐스 헤븐에서 고아들을 데려와 돌봐주다가 해결사가 아닌 배달원의 일을 도맡았던 것 같지만, 이마저도 포기하고 혼자만의 도피 생활을 지속한다. 낡아 녹슬어버린 잭스의 버스트 소드를 지니고 다니던 그는 성흔 증후군도 생겨 죽음에 가까운 상태가 됐음에도, 네(잭스) 몫까지 살기로 했으나 결국 무리였다며 자살 시도를 했다는 암시까지 주며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솔직히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본 입장으로서 클라우드의 상태가 공감됐음.

  AC 설정 비화에서 클라우드가 고아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에어리스가 생각났기 때문이라고 함. 본편에서 에어리스가 고아원도 도우며, 아이들과 친밀하게 지냈던 거 생각하면 에어리스가 그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나도 크다.
 

 

  티파와 마린은 클라우드를 찾으러 에어리스의 교회에 도착한다. 두 사람은 클라우드가 교회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특히 티파는 복잡한 심경을 갖는다. 나는 티파의 AC 착장이 취향이고, 캐릭터에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 이쪽을 선호하게 된다. CV 연기 톤도 원작 - AC가 더 나은 것 같고 (별개로 티파 성우분 발성도 안 좋고 연기 못함), 리메이크까지 이어지는 본편에서 여성혐오적 면모를 크게 보여서 거부감을 느꼈는데 AC에서는 전투도 혼자서 하고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지라 이쪽에 강세로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음. 세피로스 3형제 하나랑 1:1 전투하는 장면 좋았다. 여자와 남자가 대등하게 싸우는 거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부분임. (티파가 결국 패하긴 했지만, 본편에서 티파는 항상 최종적으로 남자의 결정타 도움을 받고 수동적으로 의존했던 거 생각하면 AC에서 취급이 엄청엄청엄청 좋아진 게 느껴짐.)

  클라우드에게 도망치지 말라고 하던 티파였지만, 티파 역시 에어리스의 죽음으로 인한 죄책감을 느껴 팔에 에어리스의 초커를 연상시키는 끈을 묶고 다니는 게 좋았다. 마린도 에어리스의 리본으로 머리를 묶고 다니고…. 독백으로는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니 마린의 경우, 에어리스와 만난 시간이 상당히 짧은데도 애정과 신뢰가 느껴져서 좋았던 것 같다. 클라우드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에어리스에 대한 상실감이 크다는 게 느껴진다.
 

 

제목이 'water(물)'인 이유를 실감하게 되는데, 클라우드(구름)와 에어리스(땅)는 상징성 띄는 이름을 하고 있다.
 구름과 땅이 유일하게 연결되는 순간은 '물'이 있을 때.
  특히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땅이 젖기 시작하고 물이 고이면 강물이 형성돼 그 위에 하늘이 비치는 형태로라도 서로를 잇는다.
  리메이크에서도 마테리아에 물(얼핏 보면 구름처럼 보인다.)이 들어있는 형상을 띄는 식으로 클라우드와 에어리스의 관계를 표현한 걸 생각해 보면, 파이널 판타지 7에서 물은 클라우드와 에어리스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관계의 상징성을 띄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별개로 노래가 편안하고 좋았음.
  티파와 클라우드를 지켜주는 교회 에어리스의 꽃밭. 살아서 고통받는 클라우드가 유일하게 안정을 갖는 순간이 에어리스의 꽃밭 위에 있을 때라는 게 독자의 입장에서는 애틋하게 느껴진다.

  게임하면서 알게 된 내용인데 미드가르의 슬럼가는 꽃이 필 수 없는 환경이라고 한다.
  그런데 에어리스가 있는 교회나 5번 슬럼가에서는 꽃이 활짝 피어있고, 에어리스는 꽃들과 교감했던 걸 생각해 보면 고대종의 특수성으로 피어난 꽃이라고 유추 가능한데 '클라우드-에어리스'를 상징하는 요소인 '물'을 고려해 보면, 교회의 꽃은 에어리스의 눈물로 만들어진 꽃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5번 슬럼가는 태양빛이 들어오니 예외) 꽃은 태양과 물로 자생하는 식물이니까….
  꽃이 절대 필 수 없는 미드가르의 슬럼가 교회 바닥에 꽃을 피워내 관리하는 에어리스의 면모는 정말 교회의 꽃 그대로 슬럼가의 환경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강인함을 보여준다.
클라우드가 에어리스의 온기를 느낄 때 처음 재생된 OST 'Water'

 

 에어리스는 죽었음에도 죽으려고 하는 클라우드에게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힘쓴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결국 클라우드의 모친, 클라우디아의 유언과 일치한다. 클라우드에게 '살아가라'.
  에어리스는 어떻게든 '꽃'으로 클라우드를 보호하려고 한다. 성흔 증후군으로 고통받는 클라우드를 꽃밭으로 감싸 만지고, 죽어서까지 클라우드를 고통으로부터 지켜낸다. 에어리스의 클라우드에 대한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던 장면.

 그리고 클라우드는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에어리스와, 제 상상일지도 모르는 심상 세계에서 등 뒤 너머로 닿는다.

 물 아래로 클라우드의 전화기가 떨어진다. 마치 클라우드가 수장한 에어리스의 시체를 연상시키듯. 그리고 들려오는 OST인 'Water'.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에어리스의 온기를 느끼는 클라우드.


 
  중반부, 동료들의 도움을 받고 도약하며 거대 몬스터와 대치하는 상황임에도 마지막 도약에서 에어리스의 손을 잡는 상상을 하는 클라우드를 보고 미친놈이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더라…. 사견으로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이가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사람이든 뭐든) 클라우드는 에어리스에 대한 마음이 너무 커서 무리일 듯. 애당초 타 게임 콜라보 이벤트나 리메이크에서 하는 거 보면, 그 어떤 것도 에어리스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 같음. 클라우드가 클라우드로서 진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게 파이널 판타지 7의 핵심 줄거리라고 생각하기에 전직 솔저를 떠나 나에게 솔직해질 수 있도록 큰 할애를 한 에어리스를 잊지 못하고 계속 찾아 헤매는 거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약속의 땅에 가서 에어리스와 재회할 수 있는 날을 3자인 나도 바라게 된다.
 
 죽은 에어리스는 계속해서 살아있는 클라우드에게 말을 건넨다. 최종전을 앞둔 클라우드는 교회에서 에어리스의 말 한마디와 함께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로 성흔 증후군이 나은 것을 확인한다. 마지막에 이르러서까지 클라우드를 고통에서 지키려고 하는 그녀의 일념.

  사념체로 리유니온 형태를 이룬 세피로스는 클라우드에게 묻는다. 무엇이 너를 강하게 만든 것이냐고. 클라우드는 너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고 일격을 가른다. 무엇이 강하게 만든 건지는 명확했다. 에어리스가 클라우드를 강하게 만들어줬고,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며 다시 에어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물'은 확실히 에어리스와 클라우드를 이어주는 상징. 이윽고 비가 내리며 하늘 아래, 사람들의 성흔 증후군이 낫기 시작하는데 이 장면이 에어리스의 치유의 바람을 연상시킨다. 티파가 물방울을 보고 "계속 곁에 있어줬구나, 고마워." 에어리스에 대한 끝없는 감사의 말이 감동이기도.

  총을 맞은 클라우드는 하늘에서 떨어진다. 에어리스는 클라우드를 빛으로 감싸 쥐고, 볼을 어루만지며 또다시 그의 목숨을 살려주고 마찬가지로 죽은 영혼인 잭스와 함께 라이프스트림으로 돌아간다. 이후, 클라우드는 에어리스를 수장시켰던 정경과 비슷한 교회의 물 위에서 눈을 뜬다. 아이는 "언니가 클라우드는 여기로 올 거라고 했어." 말하고, 동료들이 클라우드를 반겨준다. 성흔 증후군이 낫지 않은 덴젤은 클라우드(와 에어리스)의 인도를 받고 물로 저주를 씻어내려 병에서 낫게 된다. 주변이 기뻐하는 와중, 클라우드는 다시 소중한 사람인 에어리스의 모습을 발견하지만 그녀는 빛 속으로 잭스와 함께 사라진다. 난 혼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총체적으로 봤을 때, 클라우드는 에어리스의 죽음을 뛰어넘지 못한 것 같다. 약속의 땅으로 가서 그녀를 만나겠다는 최종 목표를 세운 거 보면….
 

 
  그리고 의문인 건 AC 보고 클라우드 ♥ 티파 / 잭스 ♥ 에어리스 엔딩이라고 헛소리하는 사람들 있던데 (심지어 많음; 여기 팬덤 커플링판 여성혐오도 심하고 많이 이상한 것 같음.. 사실 남녀커플링 중심인 사람들이 이성애 중심주의에 빠져있어서 여성혐오가 제일 심하긴 한데.. 여기가 유난임) 독해력 괜찮은 거임?;; 이걸 그렇게 해석한다고..? 근데 마지막 장면 잭스가 너무 뜬금없이 끼워져있어서 니 뭐함? 소리 나오고.. 왓챠에서 본 거라 캡처 주워서 첨부하려고 했는데 본편 오독하는 비공식 커플링 악의적인 캡처 심한지라 내가 아이패드로 캡처한 거 수록해놓음.. 난 진심 내용 오독하는 게 제일 스트레스임 ㄱ-

  클라우드가 본편에서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던 걸 생각하면 클라우드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에어리스도 사실은 클라우드의 망상 속 이미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치유의 물은 확실히 에어리스가 클라우드와 동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된다. 나의 죽음에 죄책감을 갖지 말고 살아가라는.
 


ETC.

리버스 中 이 장면, 이 대사 클라우드의 진심어린 말이라 개큰웃음감임.

 

"소중한 사람조차 지킬수 없었던 내가, 대체 뭘 할 수 있단거지?"


염천 지긋지긋함 빨리 약속의 땅으로 가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약속의 땅이라는 건 루퍼스의 표현도 빌리면 유토피아에 가깝고 그냥 사후세계인 것 같은데 이쯤되면 약속의 땅 형태가 궁금함..